내가 졸업할때 교장선생님이셨던 분이 무위당 장일순선생님의 동생인걸 오늘 알았다.. 자그마한 체구에 늘 조용한 미소로 기억되는 그분.. 지학순주교님과 장일순 선생님.. 난 참 좋은 학교를 다녔었구나... [잘 쓴 글씨]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 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못 미쳐. [똥물] 친구가 똥물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바깥에 선 채 욕을 하거나 비난의 말을 하기 쉽습니다. 대개 다 그렇게 하며 살고 있어요. 그럴 때 우리는 같이 똥물에 들어가서 ‘여기는 냄새가 나니 나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친구도 알아듣습니다. 바깥에 서서 입으로만 '나오라' 하면 안 나옵니다. [ 출세 ] 요즘 출세 좋아하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출세지요. 나, 이거 하나가 있기 위해 태양과 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이 지구 아니 우주 전체가 있어야 돼요.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 돼요. 그러니 그대나 나나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 거예요. [ 밥 한 그릇 ] 해월 선생이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밥 한 그릇을 알게 되면 세상만사를 다 알게 된다고.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거기에 온 우주가 참여해야 한다고. 우주만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질 수 없어요. 밥 한 그릇이 곧 우주라는 얘기지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 힘을 합하지 않으면 생겨날 수 없으니 밥 알 하나, 티끌 하나에도 대우주의 생명이 깃들어 있는 거지요. [누가 하느님?] 자네 집에 밥 잡수러 오신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해야 혀.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 화해 ] 화해는 우리의 일체의 권리와 조건들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것은 또한 우리가 적대자들 가운데서 우리 자신들을 본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적대자는 무지함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우리 자신들 또한 많은 일들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로지 사랑이 넘치는 자비와 올바른 자각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 변화 ] 사회를 변혁시키려면 상대를 소중히 여겨야 해요. 상대는 소중히 여겼을 적에만 변해요. 무시하고 적대시하면 상대는 더욱 강하게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르다는 것을 적대 관계로만 보지 말아야 해요. 내 것이 옳다고 하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틀을 갖고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끼리만 판을 짜려고 해서는 세상의 큰 변화를 이루기 어렵지요. [ 담 ] 모든 종교는 담을 내려야 합니다. 모든 종교의 말씀은 같아요. 어차피 삶의 영역은 우주적인데 왜 담을 쌓습니까? 그것은 종교의 제 모습이 아닙니다. 담을 내려야 합니다. 너는 어떤 종교 나는 어떤 종교라는 걸 존중은 하되 생활과 만남에 있어서는 나누어져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하나'니까요. [ 거룩한 밥상 ] 이 물 한 컵, 밥 한 사발, 김치 한 보시기 이것은 제왕이나 다름이 없는 거룩한 밥상이란 말이에요. 그 자세 그 깨달음이 없으면 언제나 남의 호화로운 것에 도취해가지고 최면 걸려서 오늘날의 문명 속에서 오는, 매스컴을 통해서 오는 환각 때문에 맨날 겉돌게 되요. [ 향아설위 ]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향아설위(向我設位)'라는 거예요. 그것은 종래의 모든 종교에 대한 대혁명이죠. 늘 저쪽에다 목적을 설정해놓고 대개 ‘이렇게 이렇게 해주시오.’ 하고 바라면서 벽에다 신위(神位)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그게 아니라 일체의 근원이 내 안에 있다. 즉, 조상도 내 안에 있고 모든 시작이 내 안에 있으니까 제사는 내 안에 있는 영원한 한울님을 향해 올려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 동고동락 ]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편하고 즐거운 것만 동락(同樂)하려고 들지요. 그런데 고(苦)가 없이는 낙(樂)이 없는 거예요.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동고동락한다는 것 자체가 생활이지 동락(同樂)만 한다면 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일성] 오늘날 아무리 많은 전문가들을 모아 놓아도 전일성(全一性)을 상실했을 경우엔 그게 결국 지식의 모자이크밖에는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죽은 것을 갖다가 한데 꿰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말하자면 생태를 죽음의 무기태로 만들어버리는 거지요.
'감동이 있는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레니엄맨"책 말미의 칭기스칸의 편지 (0) | 2012.02.08 |
---|---|
꿈.. 대단한 꿈을 가진 모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0) | 2011.03.11 |
그렉 모텐슨 - 세잔의 차 (0) | 2009.11.18 |
여러분 사랑합니다.(이광재 의원 영장실질심사전...) (0) | 2009.11.12 |
어느 어머니의 말씀 (0) | 2009.11.03 |